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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현지시간 4월 1일인 오늘은 애플사가 설립된지 정확히 35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업이지만 애플사가 처음 세상에 나온 1976년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오늘은 애플사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의 자료를 참고했으며 애플사의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만을 간추리고 요약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애플사의 역사는 현재진행중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회귀성을 보면 영원한 왕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애플사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지켜보는것도 흥미진진할듯 보입니다.


1970년대 

애플컴퓨터사는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에 의해 1976년 4월 1일에 창립되었습니다.

이들중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는 고교시절부터 친구 사이였고 모두 전자 계통에 심취해 대학을 중퇴했으며,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 사에, 스티브 워즈니악은 휴렛 팩커드(HP)에 들어갔습니다.

흔히 잡스의 집 창고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휴렛 팩커드의 역사와 혼동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워즈니악과 잡스 각각 각자의 집에서 일했으며, 컴퓨터의 최종 조립만 잡스의 집 차고에서 했습니다.


워즈니악은 틈틈이 컴퓨터를 설계했으며, 1976년에  애플 I이 되는 컴퓨터를 디자인했습니다. 잡스는 이 컴퓨터를 판매하기 위하여 워즈니악을 설득하여 1976년 4월 1일에 애플컴퓨터를 설립했습니다.

이 애플 I 컴퓨터는 요즘처럼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본체만 완성되었으며 화면 출력을 위해서 별도 구입한 모니터를 연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는 회사 인근의 컴퓨터 전문점이던 바이트샵(The Byte Shop)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최초의 50대의 물량을 500달러에 주문받았습니다.

그 후 잡스는 당시 미국의 유력한 전자 부품 판매 회사인 크래머 일렉트로닉스로부터도 주문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빌리거나 폭스바겐 버스를 포함한 여러 물건을 팔아 조달한 자금을 기반으로 최초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보다 향상된 성능과 키보드 일체형으로 개인용 컴퓨터의 완성된 모습을 가진 애플 II는 1977년 3월 16일 미 서부 해안 컴퓨터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다른 경쟁 상품보다 고가였지만 곧 시장을 선도하는 상품이 되었으며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루어 이후 컴퓨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애플 II는 컬러 그래픽, 오픈 아키텍처가 높은 완성도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흔히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같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작업은 워즈니악 혼자서 설계 조립을 다했다고 합니다. (스티브잡스는 탁월한 영업사원이었죠^^)



1980년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는 수익성 높은 업무용 시장에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연합으로 인해 경쟁에서 고전함에 따라 1980년 5월 애플 III를 선보이지만 애플 III의 냉각팬 과열 문제로 수천 대의 컴퓨터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등 시장에서의 상황이 계속 악화 되고 개인용 컴퓨터에서의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게 됩니다.

두 경쟁 진영은 서로 다른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IBM은 중대형 컴퓨터로 쌓아 올린 역사와 전통에 의한 신뢰감을 배경으로 한 IBM PC의 기치 아래 다른 협력사들에게 개방적인 하드웨어를 생산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를 번들로 제공한 16비트 개인용 컴퓨터를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애플사는 애플 II의 복제품이 많이 제작되어 피해를 봤으며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이전과 반대로 폐쇄적인 하드웨어를 지향하는 정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 80년대 초반 애플은 교육용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린이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컴퓨터 언어인 로고(LOGO)와 같은 소프트웨어와 교육용 콘텐츠로 세계의 여러 학교에서 환영받았습니다.

이러한 교육 시장으로의 진출은 애플이 캘리포니아 주 소재의 학교마다 하나씩 애플 II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육 시장에서 애플의 확고한 선점은 가정용 시장에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84년 애플은 매킨토시를 발표합니다.
매킨토시는 슈퍼볼 경기 중계방송에서 방영된 유명한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1984'로 알려진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150여만 달러를 들인 이 광고는 리들리 스콧이 감독(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등의 영화를 제작한 감독으로 지금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1984년 당시엔 이제영화한편을 감독한 초보감독이었습니다^^)이 맡았습니다.

슈퍼 볼 XVIII 기간이던 1984년 1월 22일에 방송되었습니다.

매킨토시를 성공으로 이끌게 된 실제적인 계기는 훌륭한 인쇄 품질의 레이저라이터와 페이지메이커의 출시였습니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전자출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레이저라이터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여서 훌륭한 출력 품질을 만들 수 있었고  전자 출판 소프트웨어인 페이지메이커는 본격적인 전자 출판용 솔루션이었습니다. 이후 전자출판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애플의 판매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쿽익스페레스와 매킨토시를 이용한 솔루션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현재도 인쇄&출판업계에선 애플사의 솔루션을 대적할 업체도 없습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윈도 1.0을 발표합니다. 
초반에는 그리 위협적인 대상이 못되었지만 이후 1990년대부터는 매킨토시의 저렴한 대안으로서 또한 많은 저변을 확보한 MS-DOS 기반을 통해 시장에서 패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애플은 이에 대하여 지적 재산권 침해의 법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애플이 패소했습니다.
이후 애플이 맥 오에스 텐을 출시하기 전까지 클래식 맥 오에스 운영 체제들은 윈도에 비하여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닥친 애플의 위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영입한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와의 내분 끝에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내고 최고경영자에 취임합니다. 1985년, 친 스컬리 경향을 갖게된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주요 업무를 박탈했습니다.
잡스는 후에 애플에서 퇴사하고 넥스트 사를 창업하게 됩니다.

1990년대

1989년 매킨토시 포터블의 실패 이후 애플은 더 나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제품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첫 번째 휴대 기기는 소니가 제작했는데 소니는 매킨토시 포터블의 사양은 유지하면서 2시간 용량의 좀 더 작은 배터리를 채용하고 20MB 하드 드라이브를 탑재했으며 9인치 패시브 매트릭스 스크린을 채택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워북 100은 1991년에 소개되었습니다.

파워북은 현대적이고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노트북 컴퓨터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기기로 인해 애플은 데스크톱 뿐만 아니라 노트북 시장에서도 기술과 디자인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1991년에 애플은 맥 오에스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벌여 시스템 7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속도가 느리고 많은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컬러 인터페이스 기반의 다양하고 강력한 네트워크 호환성 등 차세대 컴퓨터 운영 체제의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파워북을 비롯한 새로운 애플의 제품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애플의 수익 또한 상승했습니다.
컴퓨터 관련 언론들은 애플의 발표에 대하여 귀를 기울였고, 애플의 유명한, 발전된 기술진이 다음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내어 놓을지에 대한 공론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애플이 어떤 새로운 것을 선보이면 사람들은 이것을 "새로운 표준"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사람들은 윈도가 더 저렴하고 보편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운영 체제 시장에서의 점유율 차이가 점점 벌어졌습니다. 특히 업무용 시장에서의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성공과 저렴한 가격의 컴퓨터와 주변기기,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지원 소프트웨어들로 인해 많은 고객들이 윈도우진영으로 돌아섰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시장 점유율 싸움에서 다시 우위를 찾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 애플은 일반 사용자용 전자기기로 눈길을 돌립니다. 이러한 애플의 변화에 대한 예가 바로 일반 사용자를 위한 디지털 카메라 퀵테이크였습니다. 또한 존 스컬리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던 개인용 휴대형 뉴턴 PDA가 그것입니다.
뉴턴은 1993년 소개되었습니다. 이 기기는 비록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나 팜 파일럿과 포켓피씨와 같은 PDA 시장의 발달에 시초가 되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애플은 매킨토시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95의 등장은 다시금 운영 체제에서의 선도력에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4년 애플은 IBM과 모토로라와 합작하여 새로운 CPU를 개발하여 인텔에 대항하기 위한 AIM 연합을 구축하였습니다. 그 결과 RISC 구조의 파워피씨를 사용한 파워 매킨토시 라인업이 등장하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 애플은 자사의 운영 체제의 멀티태스킹 능력과 메모리 점유에 대한 개선을 추진했지만 내린 결론은, 차라리 새로운 운영 체제를 채택하여 매킨토시에 맞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애플은 Be의 BeOS, 넥스트 사의 넥스트스텝,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NT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채택했고 이는 훗날 맥 오에스 텐의 기반이 됩니다. 이런 결정에 따라 1997년 2월 7일 애플은 넥스트 사와 넥스트스텝 운영 체제에 대한 인수를 마쳤습니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됩니다. 1996년 2월에 새로운 CEO가 된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부임한지 17개월 만인 1997년 7월 9일 저조한 실적과 위기 상황으로 경영을 몰아간 책임을 지고 최고 경영자에서 물러납니다.

길은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의 뛰어난 경영자였으나, 결국 애플이라는 기업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임시 최고경영자의 자격으로 다시 애플의 경영을 맡게 되었고 다시 재정비와 부흥을 이끌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먼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쉽을 체결한다고 발표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5년간 계약 관계를 유지하며 매킨토시용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발매하고 애플에 대하여 1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매킨토시에 번들로 탑재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스크린상으로 밝힌 메시지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향후 매킨토시용으로 발매할 소프트웨어의 로드맵을 밝히고 애플의 성공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스크린을 통해 화상이 나온 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필요 없는 경쟁보다는 애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장합니다. 
 
1997년 11월 10일 애플은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온라인 스토어를 발표합니다. 이 사이트는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같이 가지고 온 웹오브젝트 응용 프로그램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온라인 직거래 상점은 애플의 새로운 생산 전략에 따라 새롭게 개편되었고 파워피씨 G3을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를 발표했습니다.

1998년 8월 15일 애플은 초창기 매킨토시 128K의 디자인으로 회귀하여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한 디자인의 새로운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입니다. 아이맥을 디자인한 팀은 조나단 아이브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조나단 아이브는 아이팟, 아이폰, 맥북, 아이맥, 아이패드등 대부분의 애플제품을  디자인한 애플사의 디자인부문 부사장입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디자인을 채택하여 디자인적으로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아이맥은 시장에서 대단히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발매 다섯달만에 거의 80만 대가 판매되어 애플 사의 위기 회복의 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맥 덕분에 애플은 1993년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한편 애플은 매크로미디어로부터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파이널 컷 프로를 구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반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아이무비, 전문가를 위한 파이널 컷 프로가 1999년에 출시되었습니다. 파이널 컷 프로는 현재 가장 성공적인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청하는 대부분의 TV프로그램이 파이널컷의 손을 거친거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2000년대

2001년 애플은 차세대 매킨토시용 운영 체제인 맥 오에스 텐의 첫버전인 치타를 발표합니다. 넥스트의 오픈스텝과 BSD 유닉스에 기반해서 매킨토시 운영 체제를 다시 재설계한 운영 체제입니다.

일반 사용자와 전문 사용자 모두를 위해 유닉스의 장점인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높은 보안성을 가지는 한편 매킨토시의 전통적인 사용하기 쉽고 간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결합하였습니다. 
 
2001년 5월, 애플은 애플 스토어라 불리는 직영 매장을 개장하고 소비자와 더욱 친밀하게끔 다가섭니다.
미국의 각 소비 중심지에 세워졌으며 기존 컴퓨터 상점과는 달리 훌륭한 인테리어에 친절한 안내원, 상품을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는 진열, 교육과 서비스 그리고 판매를 결합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만들어낸 소매점이었습니다.

이 상점의 건립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점점 떨어지는 애플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소매시장에서 지역 공급망인 딜러와 대형 쇼핑 마트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으며 델사와 같은 전화와 인터넷 주문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업계의 트랜드에 반대로 도전한 것이 그 두번째 이유였습니다.

2011년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 전세계 곳곳에 300여곳이 넘는 애플스토어가 운영중에 있습니다.

2000년대에도 매킨토시의 혁신적 개발은 계속됩니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흰색 일반 사용자용 아이맥과 아이북을 출시하고 교육 시장을 겨냥한 일체형 컴퓨터인 eMac을 출시합니다. 한편 전문가용 매킨토시 컴퓨터들은 금속 재질의 외장을 사용했습니다.

2001년 티타늄 파워북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파워맥 G5가, 2004년에는 시네마 디스플레이가 출시되었습니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2005년 6월 6일 키노트에서 애플이 2006년부터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매킨토시를 만들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2006년 1월 10일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를 장착한 최초의 매킨토시를 선보였습니다. 이때 선보인 기종은 맥북 프로와 아이맥이었습니다. 두 컴퓨터 모두 인텔 코어 듀오 칩셋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더 빠른 속도와 향상된 성능을 선보였습니다.

2001 년 9월 23일 애플은 휴대용 음악 재생기인 아이팟을 발표했고 11월 10일에 정식 발매했습니다. 곧이어 온라인 음악 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열렸고 아이팟과 연동되는 음악 파일들을 한곡당 99센트에 판매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정식으로 음반사와의 계약을 통해 합법적인 디지털 음악을 공급하는 시장의 1인자가 되었고 2006년 9월에는 15억 곡 다운로드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아이팟은 액정표시장치,내장 배터리, 대용량 메모리와 클릭휠방식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매킨토시와 같은 편리하면서도 간결하게끔 만들고 이를 컴퓨터에 설치한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을 통해 음악과 기타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동기화 시키는 제품이입니다.

애플은 이를 기반으로 점점 사용자 경험을 더욱더 확장하여 컬러 디스플레이를 채용하고 사진및 비디오를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발전시킵니다. 특히 음반회사들과 헐리우드 영화사, 방송사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음반,영화, 텔레비전 쇼등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2007년 ~ 2011년

2007년 1월 9일 맥월드 엑스포에서 스티브잡스는 애플컴퓨터사라는 회사명을 애플사로 변경합니다.
이것은 더이상 애플사는 컴퓨터만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것을 알리기 위한것입니다.

바로 아이폰이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폰(iPhone)은 2007년 1월 9일에 애플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발표한 터치 스크린 기반의 아이팟, 휴대전화,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세 가지 주요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입니다.

2007년 6월 29일 오후 6시 미국 AT&T 대리점과 애플 매장에서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4GB 모델과 8GB 두 가지 모델이 출시되었으나, 2007년 9월 5일부터 4GB 모델이 단종되고 8GB 모델이 99달러에 판매되었다.

2008년 7월 11일, 기존 아이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지고, 용량이 커진 3세대 통신망에 대응하는 '아이폰 3G'가 미국에서 발매되었습니다. 그 뒤 2009년 6월 8일, 더 빠른 CPU와 아이폰 OS 3.0을 기본으로 채용한 '아이폰 3GS'가 미국 WWDC에서 발표되었으며, 2010년 6월 8일, iOS 4를 채용해 멀티태스킹 기능 등을 탑재한 '아이폰 4'가 정식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아이폰은 2010년 현재 미국,한국을 비롯,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타이완, 러시아등 80여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지속적으로 개통 국가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KT를 중심으로 도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출시가 연기되다가 2009년 11월 28일 정식 출시됩니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에 탑재된 모바일 전용 iOS는 아이콘 형식의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으며, 이는 이전까지의 스마트폰과 크게 다른 형태로서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폰 7등 다른 스마트폰과 모바일 OS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폰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2007년 이후 2011년 현재까지 1억대 이상이 팔렸습니다.
단일기종 모바일 기기로는 최고의 판매대수입니다.

또한 애플사는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iPad)출시를 공식 발표합니다.
아이패드는 9.7인치 LED 백라이트 IPS 디스플레이를 탑재하였으며, 아이폰과 같은 운영 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아이폰에서 구동되는 거의 모든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뿐 아니라 전자책과, 애플에서 개발한 업무용 프로그램인 아이워크(iWork) 등 보강된 기능들이 탑재된 것이 특징입니다.

2010년 4월 3일 북미지역에서 첫 출시되었으며, 와이파이 전용 모델과 3G와 와이파이를 함께 쓸 수 있는 모델 두 가지가 출시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 11월 29일 KT와 애플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 3월에 보다새로워지고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아이패드2가 출시되었습니다.
 

(All image via wikipedia )